1. 간증문
부유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엄마는 저의 어린 시절은 돈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할아버지께 공급 받았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좋은 옷, 브랜드 옷을 입고 먹고 자는 걱정 없이 살다가 점점 집이 어려워졌고, 마지막에는 부모님께서 상가 투자를 잘못해서 중학교 때 집이 완전히 망했습니다. 집에 돈이 없으니까 점점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려운 중에 이사간 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때 응급실에 실려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허벅지 뼈가 부러졌고, 다음날 새벽에 긴급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이 끝난 후 의사 선생님은 자동차의 바퀴가 1mm만 더 위쪽에 닿았으면 그 자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부모님께&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당연히 학교는 가지 못했습니다.&언니가 다니던 기독교 대안학교 교장선생님이 방문해 편입 지원을 해보라고 말씀하셨고, 집안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빠는 기부금과 학비를 위해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으면서까지 저의 회복을 위해서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언니가 다녀온 미국 교환학생을 가고싶다고 말씀 드렸고, 아빠는 또 지원해 주셨습니다. 미국에 처음 간 저는 호스트 아주머니의 자기 자식과 저를 차별하는 것이 힘들었고, 그 때 엄마와 연락하면서 큐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매일매일 등교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큐티밖에 없고 엄마와 학교가는 길에 나눔을 하면서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하는지 얘기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잘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우리들교회로 옮기신 상태셨고, 저 또한 부모님을 따라 우리들교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 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저희에게 집안 상황을 숨김없이 공유하셨고, 아빠는 집에 돈이 없다고 유학을 계속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언니에게 도움을 청해서 미국에 장학금으로 가는 방법을 계속 찾았지만 방법은 나오지 않았고 한국학교 복학 기간도 지나버려 학생도 아닌 신분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엄마는 저에게 생활예배를 가르쳐 주셨고, 은혜로 다시 미국에 갈수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미국으로&돌아가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하길 원했고, 대학교에 합격해 대학을 다닐수 있었습니다. 다니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비를 낼 때가 되면 딱 알맞은 금액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저도 일을 하며 부모님께 최대한 용돈을 덜 받기 위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바쁜 와중에 성적은 포기할 수가 없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놀고싶은 마음도 컸지만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되돌아보니 정말 제 실력보다 항상 큰 것을 주셨고, 힘든 학업과 알바 속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만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붙은 것도 제 실력보다 은혜가 크다는 것을 지금 끝없이 깨닫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 있는데 사명감이 생기지 않고, 인정받지 못할까봐 회피하고싶은 마음이 큽니다. 주변 친구들은 돈을 벌고 있지만 저는 학생의 신분을 선택했고, 그래서 당연히 성실하게 공부에 사명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데 비교하고 불평하는 너무 연약한 사람입니다. 아직 너무 부족하고 완고한 유대인 같은 모습 이 너무 많은데 하나씩 버리며 빈배가 되어 말씀이 선장 되시는 생활예배 드리길 소망합니다.
2. 간단 자기 소개&
출생연도:&95또래&
학업전공:&심리학
현재업무 : 대학원생
현재거주:&안양
주일예배:&판교 2부
봉사부서:&통번역팀